1. 류병엽, 뜨겁고도 건강한 조형 2. 류병엽 초대전에 부쳐 3. 소묘, 독립된 영역으로서의 그림 4. 柳鉼燁, 회화의 즐거움과 긴장감 5. 독백적 향수, 향수적 원시 6. 색면의 구성과 향토의 정서 7. COMPOSITI0N OF COLOR FIELDS AND N0STALGIC EMOTIONS류병엽은 일체의 대상을 화면에서 지워버린 미니멀리즘이나 모노크롬의 회화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회화의평면성을 추적해가는 특이한 방법을 지속해 보이고있다. 그의 화면이 풍부한 모티프로 채워지는 한 구상적인 경향에 속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일반적인 구상회화와는 다른 특이한면모를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평면의 자각으로서색면의 구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구체적인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화면은 화사한 색면들의 향연으로 채워지고 있다. 마치 작은 조각보로 연결된 보자기를 펼쳐 놓은 느낌이다. 화면 속에 담긴 내용보다도색의 파편들이 연결되면서 이루어놓는 거대한 색채의파노라마가 보는 이를 압도하고 있다.
류병엽의 이번 작품전시에서 특기할 사안은 1백호에서 5백호에 이르는 대작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점이다. 한동안 발표가 뜸했던 사이 그는 혼신의 힘으로 수많은 대작들을 만들어내었다. 이런 현상은 좀처럼 우리 주변에서 만나기 힘든 일이다. 더욱이나고희(古稀)에 가까운 연치로 이런 대작에 매달렸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도 남는다. 작가는 많아도작품은 적다는 비난 아닌 비난이 떠돌고 있는 우리의미술 풍토를 감안한다면 그가 이번에 보여주는 대작의연작은 우리 미술계에 하나의 충격을 안걱줄 것임은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구획해 볼 수 있다. 자신의 주변을 모티프로 한 평범한생활주변이 그 하나요, 이미 자신 속에 육화된 오랜옛날의 추억, 예컨대 고향마을과 그 마을에서 일어났던이야기들의 구체적인 형상화가 두 번째이다 자신의주변이란 자기 주변의 산천이 주를 이룬다. (여름날의삼각산), (산마을 아침)등이 자신의 주거가 있는 북악의산기슭 풍경들이고 멀리는 (가을의 월출산), (정선의여름), (탐라환타지), (백두산 천지)등이다. 산곡에사는 그의 시야는 언제나 산으로 향해 있으며 사계의변화가 한결 뚜렷한 산의 풍경은 풍부한 색감으로 화면을 메운다.
한라산과 백두산 같은 거대한 산의 웅좌를 묘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대형의 화폭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 단순히 산의 외형을 담는 것이 아니라 산이 가지고 있는역사적 의미항을 담기 위해선 거대한 스케일의 화면,파노라마처 럼 펼쳐지는 구성이 아니곤 안 될 것 같다. 그는 이 산들을 바라보는 감동을 산 가득히 날리는작은 색면들의 퍼레이드로 묘출해주고 있다. 마치초등학교 운동회 날 운동장 가득히 휘날리는 만국기같이 말이다.
이미 세월 저편에 자리한 고향마을의 풍경은 심상을 통해 걸러져 나온 것이기에 한결 풍요로운 내면으로다져진다. (산마을), (하얀 소), (귀가), (과일 따남녀), (일하는 가족), (고향풍경), (산마을의 경사), (전원 만추), (고향의 가을), (과수원의 모자) 같은작품은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추억이 모티프의 원천을이룬다. 고향 마을엔 논과 밭이 펼쳐지고 산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과 그 됫면으로 아스라이 전개되는 산과산들, 밭에는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 사람, 쟁기질 하는 사람, 마을로 이어진 길 위에는 들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점경되고 장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는모습이 들녘으로 난 길 위에 점점이 이어진다. 과수원엔 과일을 따는 처녀와 아래서 과일을 주워 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그지없이 정답기만 하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애틋한 정감을 자아내게 하는 대상이지만 류병엽의 화면을 통해 보는 고향은 더욱 풍요롭고 아늑하기만 하다.
그의 화면엔 가끔 도시 언저리의 풍경도 발견된다.
그러나 이들 도시의 풍경들도 그의 화면 속에 들어오면전원의 풍경, 산업화 이전의 전원풍경으로 탈바꿈된다. 어릴 때 보았던 고향 마을에 대한 기억 때문일것이다. 그러기에 현실의 풍경이면서 동시에 과거의풍경 이기도 하다.
풍경 외 많이 등장하는 것은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인물들 이다. (해변의 사람들), (모자), (아담과 이브),(소통), (해변의 백마), (청춘의 계절) 등에서도 발견되는 것은 풍경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인물 상황이있는가 하면 추억 속의 인물들로 나누인다는 점이다. (5월의 고궁), (젊음의 시간), (섬마을 부부) 같은인물은 현실에서 취재된 것인 반면, (해변의 백마),(청춘의 계절) 같은 작품은 추억 속에서 건져 올린 과거속의 인물들이다. 인물들은 한결같이 건강하다 벗은상태로 나타나는 인물들의 모습은 원시적 삶을 구가하는 유토피아적 설정을 동반한다.
색채와 형태는 때때로 화가를 분류하는 개념으로 적응될 때가 적지 않다. 예컨대 색채화가니 형태화가니 하는것이 그것이다 색채에 대한 인식이 강한 경우 형태를소홀이 할 수 있고 형태를 중요시하다보면 색채는 형태의 종속 개념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류병엽의 경우, 이런 분류는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그는색채와 형태를 아우르는 데서야 말로 그 독창적인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색면을 통해서는 끊임없는평면의식을 노출시키지만 형태를 통해서는 회화가 이미지의 세계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화는 회화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란 사실을 그만큼 강열하게 주장하고 있는 예도 흔치 않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