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중앙우체국에서 가서 B선생님께 보낸 편지.
선생님 전상서
선생님! 옥체안녕하시온지요. 따뜻한 봄에 바야흐로 역사는 비약하고 있사옵니다. 세계의 초점은 날로 새롭게 승천하고 있사옵니다. 그 초점은 언제나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는 희망 속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이 같은 선생님의 거룩한 정열을 생각할 때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저는 피눈물을 흘리며 소멸해야 할 괴로움이옵니다.
몇 년전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던날 이후 단 한점의 작품도 완성못해본채 무수한 시간들을 일보의 발전도 없는 mannerism에 제공했다고 생각이 들 때 그리하여 저의 그림수업은 완전히 없어져버렸다고 느끼는 지금 저의 앞에는 죽음만이 우뚝 서 있을 뿐이옵니다. 저의 총재산을 바쳐 무너뜨려 보아도 벽은 먼지 한날 날라가지 않고 그대로 서 있을 뿐이옵니다.
그림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사람의 情神이란 얼마나 순결한 것이면 몸부림속에서 이 짙은 눈물! 피눈물을 흘리는 것이옵니까? 마음속에서는 하늘 같은 그림이 얼마든지 있지만 이것은 저를 미치게하는 영혼일 뿐 Canvas와 부딪치는 때부터는 고통, 차라리 속시원한 죽음만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혼자의 힘으로 제거하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약 2년의 긴 날을 소비했사오나 끝내 그림은 잡히지 않은 꿈이 되었사와 저의 이 초라한 죽음은 선생님을 부르옵니다.
약진하고 계신 선생님! 따뜻한 정을 저에게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는 지금 선생님 밑으로 가고 싶사옵니다. 선생님께 뎃상을 배우기 위해서 입니다. Mannerism이라는 원한의 적을 몰아내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 종로 3가 용에게 갔으나 1月달에 내려갔다는 애들의 말이었읍니다.
선생님 玉書를 기다리고 있겠사옵니다. 혹시 석고가 없으시다면 저의 「씨네카」를 가지고 가겠습니다.
1961.3.26. 서울에서 병엽 올림
(등기로 보냈다.)
지금 거리에는 第五回現代展이라는 큼직한 플래카드들이 곳곳마다 나부끼고 있다. 조선일보 석간에는 초대작가의 명단이 어마어마하게 나와있다. 극단에 가까울만큼 초라한 나는 그것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뎃상을 하는데, 결코 내 건강은 파괴되어 가는가? 현기증이 일어난다. 아무튼 나의 눈이란 이상한 거다. 하루에 몇번씩 物體의 영문도 모를 본질들을? 발견하여도 나는 그것들을 이겨먹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또 내일은 무엇이 보여질라나, 이렇게 내 生은 흘러가버리려나! 잡자, 잡아서 결말을 꼭, 꼭, 보자. (시선의 성격문제)
繪畵는 우선 뎃상부터 作家의 영혼을 요구한다.
